크론병 직장인의 하루 — 화장실 문제, 그리고 회사에 알릴까 말까

크론병 직장인의 하루 — 화장실 문제, 그리고 회사에 알릴까 말까

저는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크론병 진단을 받은 채로 취업했고, 입원과 수술로 자리를 비운 적도 있고, 지금도 정기 진료를 다니며 회사를 다닙니다. 오늘은 크론병 환자의 직장생활에서 모두가 겪지만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는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화장실, 그리고 커밍아웃.

1. 화장실 문제

크론병 직장인의 최대 고민은 업무가 아니라 화장실입니다. 급할 때 자리를 뜨는 게 눈치 보이고, 회의 중엔 더합니다.

제가 정착한 요령들입니다.

  • 아침 루틴을 회사 도착 전에 끝냅니다. 저는 출근 시간을 조금 당겨서, 집에서 여유 있게 화장실을 다녀온 뒤 나옵니다. 하루 중 제일 요동치는 시간대를 집에서 소화하는 것만으로 회사에서의 부담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 회사 건물의 화장실 지도를 만듭니다. 같은 층 말고, 위아래 층과 비상용 위치까지. 농담 같지만 진심입니다. ‘어디로 갈지 아는 것’만으로 불안이 줄고, 불안이 줄면 신기하게 장도 덜 요동칩니다
  • 회의 전엔 무조건 다녀옵니다. 급하지 않아도요. 긴 회의가 예정된 날은 아침 커피도 건너뜁니다
  • 자리는 가능하면 출입구 쪽으로. 자리 조정 기회가 있을 때 창가 전망 대신 동선을 택했습니다. 후회 없습니다

2. 회사에 알릴까 말까

정답이 없는 문제고, 저도 오래 고민했습니다. 제 결론은 ‘전면 공개도, 완전 비밀도 아닌 단계적 공개’였습니다.

  • 인사팀/전체 공개: 안 했습니다. 필요할 때(입원 등 서류가 필요한 순간)가 오면 그때 필요한 범위만
  • 직속 상사: 알렸습니다. 갑자기 반차를 쓰거나 정기 진료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반복되면, 설명 없는 공백이 오해를 만듭니다. “장 관련 지병이 있어 정기 진료를 다닌다” 수준으로요. 병명까지 말할지는 상사와의 신뢰에 따라
  • 동료: “장이 예민하다” 정도만. 회식 자리 방어에는 이걸로 충분합니다

수술로 길게 자리를 비웠을 때 알게 된 게 있습니다. 막상 알리고 나니,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심하고 생각보다 친절합니다. 제 병을 하루 종일 생각하는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3. 취업을 앞둔 환우분께

진단받고 취업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으로는 크론병이 취업의 걸림돌은 아니었습니다. 채용 과정에서 병력을 물어볼 수 없게 되어 있고, 실제로 물어본 곳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병이 아니라 ‘내 컨디션과 함께 일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화장실 지도, 아침 루틴, 단계적 공개가 그 시스템입니다.

하나 현실적인 조언을 보태면, 단체보험이 좋은 회사는 크론병 환자에게 연봉 이상의 복지입니다. 이직 검토할 때 꼭 보세요. (보험 이야기는 이전 글 참고)

마치며

크론병 직장인의 하루는 남들보다 변수 몇 개를 더 관리하는 하루입니다. 그런데 그 변수 관리 능력이, 저는 일에서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가르쳐준 리스크 관리랄까요. 같은 처지의 직장인 환우분들, 각자의 요령을 댓글에 나눠주세요. 이 글이 우리끼리의 매뉴얼이 되면 좋겠습니다.

※ 개인 경험이며, 직장 내 공개 여부 등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신중히 판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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